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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사회주의 (3) : 모순의 타결?
1953년부터 1957년까지 이루어진 마오쩌둥의 '제1차 5개년 계획'의 첫걸음은 무상분배한 땅의 회수였다. 그리고 농촌 인구를 집단화시킴으로써 '인민공사(社)'라는 독특한 구조의 경제단위를 만든 후 이들에게 농업일을 분배하였다. 그러나 각 인민공사는 일정 기간동안 일정한 양의 목적만 달성하면 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노동력의 불필요한 동원 및 낭비를 가져왔다(당시 자료에 따르면 인민공사의 구성원은 전원 농업에 투입되었는데, 개중에는 당시 유명한 문장가 등 농업과는 관계없는 노동력까지 동원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로 실시한 계획은 "영국과 미국을 따라잡자"는 구호 아래 실행되었다.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마오쩌둥이 고안해 낸 생산력 증대 방법은 철강생산이었다. 그리하여 집집마다 용광로를 만들어 철로 만들어진 그릇, 농기구, 수저 등을 녹이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철강생산량은 비약적으로 증가했으나, 질이 낮은 재료에서 만들어진 철강의 질이 좋을 리가 없었으며, 결국 '대약진 운동'이라 불리는,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대단히 비생산적인 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자료에 따르면 이 기간동안 아사한 인구만 2000만명에 이르며, 이 기간동안 기록적인 홍수가 발생하여 사망자 수는 이보다 증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계획은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에게 경제적 재량권을 위임함으로써 중앙정부-지방정부 간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교훈을 안겨주었다. 따라서 무조건 실패로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나마 위안삼을만한 일이다.

대약진 운동의 실패 후, 1962년부터 1965년까지 저우언라이, 덩샤오핑이 잠시동안 주권을 잡게 된다. 저우언라이는 제갈공명 다음으로 중국인에게 사랑받았던 총리로, 그가 없었더라면 덩샤오핑이 빛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마오쩌둥이 이들의 통치를 뒷짐지고 보고 있었을 리 없다. 마오쩌둥은 저우언라이-덩샤오핑의 정치의 약점을 물고 늘어졌는데, 바로 '관료주의와 중앙집권화는 중국 사회주의의 기본정신과 어긋난다'는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1966년 마오쩌둥을 주축으로 한 세력이 봉기하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문화대혁명'이다. 문화'대'혁명이라 하는 이유는, 1919년 '문화혁명'이라 불리는 5·4 운동과 관련된 것으로서, '반봉건, 반제국주의, 계몽'의 정신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또 한차례 피바람이 불어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었으며, 중요한 역사적 유물들이 파괴되는 날들이 이어졌다(일례로 공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후세의 황제들이 세운 비의 무덤인 '비림'의 비석들은 홍위병들로 인해 전부 두동강이 났다고 한다).

문화대혁명의 정점은 1966년부터 1969년으로, 정치적으로는 대단히 혼란스러운 시기였을지 모르지만, 경제적으로는 지방경제, 특히 농촌의 자립적 형성기가 이루어진 시기였다는 데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사실상 문화대혁명에 대해 논할 때 1976년까지를 문화대혁명 시기라 보고 있는데, 그 이유는 마오쩌둥 및 4인방이라 불리던 강경파의 급진정책이 이때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1976년, 저우언라이가 5월에 암으로 사망하고, 마오쩌둥이 화궈펑이라는 인물을 후계자로 지목하고 9월에 사망하면서 이 사건은 일단락지어진다.

따라서, 종합적으로 볼 때 중국의 사회·경제 역사는 소련식 모델을 기반으로 하되 중국 고유의 관료주의·중앙집권적 특징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통치자는 어떻게 중국 발전을 위한 효율적인 제도를 마련할 지 고심했지만, 그 결과는 제도적 시스템의 근본적인 결함으로 인해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으로 나타남으로써 중국은 몇 차례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이는 1976년까지 불균형·비정상적인 발전으로 나타났고, 결국 중국은 이를 타파하기 위해 1978년 개혁개방과 함께 "시장"으로 기본노선을 바꾸게 된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노선을 바꿈으로써 기존의 체제와 새로운 체제 간에 생기는 또다른 모순들과 문제점을 점차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를 떠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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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개혁개방의 필요성"

-생산력 저하
-자원 동원에 의존한 외형적 성장의 한계
-생활수준 발전의 미미함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에 의한 파괴 극복
-환경적, 정치적, 경제적 한계성 인식
by 미나미 | 2007/04/01 00:25 | 공부하다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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